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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법과 약속법 그리고 청유법 제약 본문
다음의 예를 보자. (19) ㄱ. *나는 {열심히/당돌히/경솔히/못} 슬퍼했다. ㄴ. *이렇게 책임지지도 못할 일들을 벌려 놓고 떠난 그가 {열심히/당돌히/ 경솔히/못} 기막히다. ㄷ. *인사하는 면전에서 그렇게 돌아서 가버려서, {열심히/당돌히/경솔히/ 못} 무색해했다. ㄹ. * {열심히/당돌히/경솔히/못} {슬퍼하다/답답해하다/처량해하다/못마땅해 하다/우울해하다/서러워하다/비통해하다/초조해하다/창피해하다/허탈해하 다……}. 이처럼 감정이란 감정 주체의 의도가 개입될 수 없다. 따라서 감정동사는 ‘비의도 성’을 그 특성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109) 109) 다만, ‘慾’의 의미 영역에 해당하는 동사 중 ‘慾’의 의미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바람’ - 98 - 그런데, 위에서 확인한 서법 제약이나, 의도 표현 부사어와의 호응 관계에 제약 이 있는 현상은, 감정의 ‘통제성’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110) 즉, 감정동사가 의도의 의미를 내포한 서법에서 제약을 보이거나, 의도 표현 부사와의 공기에 제 약이 있는 것은,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과 소멸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를 명령법의 제약 현상에서 확인해 보자. (20) ㄱ. *그가 떠났으니 {기뻐해라/슬퍼해라/고마워해라/만족해라/즐겨라……). ㄴ. *어제 그 친구가 말없이 가버려서, {실망해라/서운해라/걱정해라 ……}. (21) ㄱ.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니, 조마조마해라. ㄴ. *그 사람이 섭섭하게 굴었으니 섭섭해해라. ㄷ. *소설이 읽기에 지겨우니, 따분해해라. 감정동사 구문이 명령의 서법을 취한다든 것은 감정의 발생을 명령하거나 소멸을 명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감정동사 구문은 위와 같이 감정의 발생에 관한 명령법 의 영역들은(이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고 4.2.2.5 참조)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다. (1) ㄱ.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가 사라져 버리길 바라고 있었다. (2) ㄱ. 이번 시험에 네가 꼭 합격하기를 바라마. ㄴ. 나는 지수가 원하는 대로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라겠다. ‘바람’의 영역에 해당하는 감정동사는 위 (1)과 같이 주체의 의지가 배제되어 있는 ‘나도 모르게’와 호응한다는 점에서는 ‘비의도성’을 띤다. 그러나 (2)처럼 의도의 의미 가 개입되어 있는 약속법이나 의도법이 실현된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의도성’을 띠 고 있다. ‘바람’의 영역에 해당하는 감정동사들이 ‘비의도적’이면서 동시에 ‘의도적’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동사류에 비해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어하다’류의 타동사도 ‘나도 모르게’와 호응하면서 동시에 약속법이나 의 도법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고, ‘화내다, 사랑하다, 원망하다’ 등 처럼 감정의 소멸에 감정 주체의 의도가 개입될 수 있는 동사도 마찬가지로 ‘나도 모 르게’와 호응하면서 약속법이나 의도법이 실현된다는 점에서 ‘비의도성’의 정도가 낮은 것으로 본다(서법제약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고 3.3.3 참조). 110) ‘감정’을 통제 가능성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관점은 Ekman(1992, 1994) Ekman & Davison(1994), J. Reeve(1997) 등에서도 보이는데, 이러한 감정의 통제 가능성 여부 는 감정동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 99 - 에 제약이 있다.111) 이는 곧 감정의 통제에 제약이 있다는 의미이다. 감정 주체가 ‘기뻐해야지’, 혹은 ‘슬퍼야지’ 하고 의도한다고 해서 슬픔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슬퍼해라, 기뻐해라’는 식의 명령법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조마조마해하는 감정’을 지니게 되는 것은 당연 한 결과이지만, 그 감정의 발생을 타인이 강요할 수는 없다. 타인이 어떤 감정의 발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감정 주체가 그 감정을 의도대로 발생시킬 수 없 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즉, 감정이란 의도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의 (15)의 의도법 제약, (16)의 약속법 제약, (17)의 청유법 제약도 마찬가지로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에 의도적으로 관여하여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감정동사는 ‘비통제성’의 특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일부 감정동사는 주어진 자극 조건에 따라서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 명 령법이 실현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22) ㄱ. 네가 계속 그런 식으로 말한다면, 나는 너에게 화내겠다. ㄴ. 내 맘을 그렇게 몰라준다면, 당신을 원망하겠다 ㄷ. 네가 잘 되기를 바라겠다. ㄹ. 당신이 시험에 합격해준다면, 나는 당신을 자랑스러워하겠다 ㅁ. 네가 그렇게 계속 내 말을 안 들으면, 앞으로 나는 너를 미워하겠어 (22)는 감정동사가 예외적으로 의도법을 취한 예이다. 그런데 예에서 보인 ‘화내다, 원망하다, 바라다, 자랑스러워하다, 미워하다’는 모두 대상 중심 감정동사이다. 대 상 중심 감정동사의 경우는 주어진 자극 조건에 따라, 위와 같이 의도법을 취할 수 있다. 또 감정이란 ‘앞으로 어찌 어찌하게 발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약속법이 실현되기도 한다. 111) 감정의 소멸에 관한 명령법은 대부분 실현 가능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본 절의 예문 (26)의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 100 - (23) ㄱ. 내 말을 잘 들으면, 이뻐하마 ㄴ. 앞으로는 너만을 사랑하마. ㄷ. 내가 원하는 대로 조건을 수정해준다면, 고마워하마 (23)은 약속법이 실현된 예인데, 약속법도 의도법과 마찬가지로 ‘이뻐하다, 사랑하 다, 고마워하다’처럼 대상 중심 감정동사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아주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감정동사가 ‘청유법’이나 ‘긍정의 명령법’을 취하기도 한다. 다음은 그 예이다. (24) ㄱ.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이제, 다같이 회개하고, 감사하고, 기뻐합시다 ㄴ. 우리 모두 기뻐합시다. 우리 선수들이 4강에 진출했습니다. 이와 같이 감정동사는, ‘의도법, 약속법, 청유법’을 예외적으로 취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감정 주체가 감정을 통제하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위에서 보인 예에서 ‘화내겠다, 원망하겠다, 미워하겠다’ 등의 동사 의 미는 감정 주체가 그런 감정을 의도적으로 발생시키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감정 주체가 어떤 감정에 대해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 이다. 감정의 통제 가능성은 감정동사 구문의 부정 명령법이 제약 없이 나타나는 것에 서도 확인할 수 있다. (25) ㄱ. 내가 떠난다고 너무 {슬퍼하지마/기뻐하지마……}. ㄴ. 시험에 떨어졌다고 너무 {실망하지마/섭섭해하지마/부끄러워하지마…}. ㄷ. 이번 일에 너무 {갈등하지마/걱정하지마/감동하지마……}. 감정동사 부정형 명령법은 감정의 소멸을 명령하는 것이다. 부정형은 긍정형과 달 리 명령법 실현에 제약이 없다 이것은, 감정의 주체가 감정을 소멸시키는 일은 어 느 정도 통제가 가능함을 전제로 한다. 또한 드물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긍정의 명령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112) - 101 - (26) ㄱ. 애들아 기뻐해라, 우리가 이겼다. ㄴ. 사람 발을 밟았으면, 좀 미안해해라. ㄷ. 밤 늦도록 가족이 귀가하지 않으면, 걱정도 하고 그래라. 이렇게 보면, 감정 주체가 감정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어느 정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어느 정도의 통제성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적극적인 통제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슬퍼하지 마라’라는 명령을 받고서, 슬퍼하지 않으려 고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노력대로 반드시 ‘슬퍼하지 않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또 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하고 있는데, 타인이 ‘이제 그만 기뻐해라’ 하 고 명령했다고 해서, 명령과 함께 그 기쁨의 감정이 소멸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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